보험중개사·의약품업체·건설사 47곳 세무조사
보험 가입 사주일가 보험설계사로 둔갑해 리베이트
국세청이 보험상품을 기업 사주일가의 법인세·증여세 탈세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일부 보험업계를 상대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이들 보험업체는 기업 사주일가에게 최고경영자(CEO) 가입 전용 보험을 팔면서 사주일가의 친인척들을 보험설계사로 둔갑시켜 수억원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불법 리베이트를 받은 사주일가를 “끝까지 찾아가 과세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25일 불법 리베이트 제공으로 탈세를 일삼은 보험중개사 14곳, 의약품업체 16곳, 건설사 17곳 등 총 47곳에 대해 세무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리베이트란 상품·용역 대가의 일부를 일종의 뇌물처럼 되돌려주는 행위를 뜻한다. 현행법상 제약업체가 의사에게, 건설사가 발주처나 재건축조합에게, 보험업계가 고객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국세청은 ‘최고경영자(CEO) 보험’(경영인 정기보험)을 활용한 신종 탈세 수법이 등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CEO 보험’이란 법인 비용으로 사주일가를 보호하기 위해 가입하는 보장성 보험이다. CEO나 경영진이 사망하는 등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 연속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보험금을 지원한다. CEO 보험시장은 초고가의 중개수수료를 챙기려는 보험중개사와 법인세·증여세를 회피하려는 중소법인 사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최근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지원되는 보험금만 10억원대 이상이고 납입 보험료도 연간 수천만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은 보험업계가 CEO 보험에 가입한 기업 사주 본인이나 배우자, 사주의 10·20대 자녀를 보험설계사로 둔갑시켜 사주일가에게 수억원대 리베이트를 건넨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보험중개사들은 영업 과정에서 “법인 비용으로 고액 보험료를 납입하므로 법인세가 절감될 뿐 아니라, 자녀 등이 고액의 보험설계사 수당을 지급받으므로 사실상 법인자금으로 증여세 부담 없이 증여할 수 있다”고 고객들의 탈세를 유도했다.
국세청은 의약품업체가 자사 의약품을 쓰는 대가로 의사들에게 뒷돈을 건넨 혐의도 포착했다. 한 의약품업체는 병원장 부부의 고급 웨딩홀 예식비·신혼여행비·예물비 수천만원을 대신 내줬다. 의사 자택으로 수천만원 상당의 고급가구를 배송하고, 법인카드로 산 상품권 1000만원어치를 병원장에게 건넨 의약품업체도 덜미가 잡혔다. 국세청은 리베이트 비용을 의약품업체의 세무상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고 법인세를 추징하면서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들에게도 소득세를 매겼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된 의료인만 수백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사를 수주하는 대가로 시행사나 재건축조합에 뒷돈을 대준 건설업체들도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한 건설업체는 재건축사업 시공사 선정 대가로 조합장 자녀에게 수억원의 가공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는 건설 발주처, 의료인, CEO 보험 가입 사주일가 등 리베이트를 받은 상대방도 끝까지 추적해 소득세를 과세하고, 허위용역 세금계산서 수수 등 세법 질서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조세범 처벌법에 따라 고발하는 등 엄정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